로마의 초대 황제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인데, 그의 원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였다. 그는 처음으로 로마를 통일한 카이사르(시저, Gaius Julius Caesar)의 양자로서, 그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자, 안토니우스, 래피두스와 연합해 그를 격파하였다. 로마가 정복한 땅을 3등분하여 자신은 유럽, 안토니우스는 아시아, 래피투스는 아프리카를 지배하게 했다. 이후 그는 래피투스를 통치자의 위치에서 끌어내린 후, 막역한 친구였던 안토니우스와 그의 연인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악티움 전투에서 물리쳐 버리고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에 오른다.
당시 아우구스투스의 벗이자 정치적 자문으로 활동한 마에케나스(Maecenas)라는 인물이 있다. 마에케나스는 물려받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외교술과 관리력을 보여주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충실한 조력자가 되어 각종 위험을 헤쳐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훗날 황제와 자신의 아내 사이에 염문이 생겨 황제와 서먹한 사이가 되었지만, 죽기 전에 자신의 유산 상속인으로 황제를 지명할 정도로 평생을 황제를 위해 살아갔다. 그러나, 마에케나스가 지금까지 잘 알려진 이유는 그의 정치적 활동보다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엄청난 재산을 기반으로, 그는 젊은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후원자(patron)가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통치 시대를 라틴문학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마에케네스의 지원을 받은 능력 있는 문학가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기업 및 금융인들이 일부 예산을 문화예술 활동에 사용하면서, 마에케네스가 다시 등장한다. 이 때는 프랑스식 발음으로 <메세나(Mecenat)>라고 불렀다. 예술의 후원자였던 마에케네스를 기리기 위해, 메세나라는 단어를 '기업의 문화예술 활동 후원'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메세나의 예로는 기업이 공연 등에 직접 후원금을 내거나 관람권을 사서 고객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들 수 있다.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지어 문화예술가에게 저렴한 가격이나 공짜로 빌려주는 것도 메세나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이 증가하고 있는데, 한국메세나협의회에 따르면 기업계에 메세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2002년 720억원이었던 문화예술 지원액이 지난해 1840억원으로 4년 새 두 배 이상이 늘었다고 한다.
영어로 표현할 때는 메세나보다 일반적인 단어인 patronage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