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 제사가 일요일이라며 좋아했던 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공사(公私)가 분명한 대쪽 부장님께 ‘오늘 아버님 제사라 좀 일찍…’이란 말은 죽어도 못하겠어서 평일 제사가 야속하기만 했던 외며느리 옥경씨. 하늘이 도우셨는지 올해는 주말에 딱 걸렸다며 내심 마음이 푸근했던 것인데, 이것이 엄청난 오산이었다.
장보기, 전 부치기는 물론이요, 고난도의 밤 치기, 나물 볶기에 더해 중간중간 남편과 애들 밥상 차려내는 일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설 명절만 하겠어?’ 하고 코웃음 쳤다가 큰코 다친 격. 명절 차례는 큰집에 모여 지내니 그저 돕는 시늉만 하면 되는 터였다.
처음엔 이 많은 일을 그간 시어머니 혼자 다 해오셨나 싶어 내심 찔끔했다. 한데 세 시간째 가부좌 튼 두 다리가 쩌르르 저려오고, 불 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슬슬 심사가 뒤틀렸다. 소파에 누웠다 침대에 엎어졌다 하지 않으면, 불량소년처럼 키득거리며 컴퓨터게임을 하는 남편의 ‘악행’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채반에 담아내기 무섭게 날름날름 동태전을 집어먹던 열 살 딸아이마저 염장을 질렀다. “할머니가 지진 동태전은 꿀맛이더만 엄마가 지진 건 왜 이리 짜냐. 게다가 타기까지 했어요.”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다정했던 딸의 배신에 옥경씨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고, 웬수 같은 서방 같으니. 살아서는 죽도록 병 수발을 시키더니 죽어서는 늙은 마누라에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까지 이 고생을 시키는구나.” 시어머니의 푸념은 계속됐다. “도대체 강씨 제사를 왜 죄 없는 박씨랑 홍씨가 지내야 한다더냐. 안 그러냐, 에미야?” 그러고는 활시위를 마침내 TV 앞에 모로 누워 있는 당신의 외아들을 향해 겨눴다. “네 눈엔 이 눈부신 봄날 불기름 뒤집어쓰고 있는 여자들이 안 보인다더냐? 빈둥대는 꼴 보기 싫으니 애들 데리고 어디로든 사라지거라!” 느닷없는 시어머니의 혁명적 발언에 어안이 벙벙해진 옥경씨. 분명한 건 팔다리에 갑자기 엔돌핀이 돌면서 힘이 불끈불끈 솟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튿날 옥경씨로부터 이 이상한 제사 무용담을 들은 여자 선배는 “네가 시어머니 전술에 완전히 말려들었구나” 하며 히죽거렸다. 며느리의 속내를 간파한 깜짝 발언으로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준 동시에, 혼신을 다해 노동하게 만들었으니! 나이 마흔이 넘었어도 여전히 안쓰러운 늙은 아들은 손주들과 함께 화창한 봄날을 놀이터에서 만끽하게 하였으므로!
그래도 옥경씨, 억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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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강씨 제사를 왜 죄 없는 박씨랑 홍씨가 지내야 한다더냐. 안 그러냐, 에미야?”
동감이다. 내가 시집 가서 제일 황당하게 생각되는 것.
내가 알지도 못하고 피 한방울 섞이지도 않았고. 날 위해 눈꼽만큼도 보태준 게 없는
장씨 집안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 한몸 바치고 있는데
정작 장씨는 빈둥빈둥 TV만 보고 늘어지게 자고 심심해 죽을라고 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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