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소한 취향

자화상 - 윤동주


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사소한 취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높일 존 낮출 비  (0) 2019.06.13
은혜 은  (0) 2019.04.17
아침마다 눈을 뜨면 - 박목월  (0) 2019.01.08
길 위에서 - 이해인  (0) 2019.01.07
아름다운 옥 유(瑜)  (0) 2018.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