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민거리/스크랩

금성 범씨 시조

금성 범씨 (錦城范氏)

1> 시조 : 범승조[范承祖]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금성(錦城)은 전남 중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발라군을 통일신라 시대에
경덕왕이
금성(금산)으로 고쳤으며,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나주
로 개칭하였다.
1981년 7월에 영산읍과 나주읍을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되었다.

범씨(范氏)는 중국 고평(산서성)에서 계출된 성씨이며, 원나라에서 예부시랑을 지낸
범승조(范承祖)
가 고려 충렬왕비인 제국대장공주를 배행(陪行)하고 동래(東來)하여 나주에
터를 잡은것이 우리나라 범씨의 시초가 된다.

그는 성리학에 정통한 학자로서 고려에 올때 북송의 대학자 정이천이 지은 [역전]과
주자의 [사서집주], [백가예설] 등 많은 문헌을 가지고 들어와 널리 보급했으며,
그의 아들
유수
가 충숙왕때 문하시랑으로 여진정벌에 공을세워 금성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을 금성으로 삼게 되었다.

범씨의 본관은 금성(錦城), 광주(光州), 안주(安州) 등 3본이 문헌에 전해지나 모두가 동원이므로
현재는 금성범씨 단본으로 하고 있다.

호남의 선비 가문으로 일컬어진 금성범씨는 시조의 증손 세동(世東)이 고려의 국운이 기울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의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개성 근처 두문동으로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태조 이성계는 그의 학문과 인품을 아껴 여러차례 벼슬을 내려 그를 불렀으나,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나주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는 세동의 6세손
가용(可容), 가종(可鐘) 형제와 전창(傳昌), 천배(天培)
부자가
성리학에 정통했고 학문과 고명한 인품으로 호남 일대에서 명성을 떨쳤다.

그외 후손 경문(慶文)이 [검암산인시집]을 저술하여 문벌가문의 전통을 지켰으며,
근대에 와서 금성범씨는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와 서울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1975년에는 243가구로 집계되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714가구, 3,01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전북 전주시 일원,

전남 장성군 남면 영산리

광주시 생룡동

------------------------------------

내 본적이 광주시 생룔동 379번지 였다... 지금은 곡성군 곡성읍으로 바꼈지만...

말도 안된다. 내가 왜 곡성군으로 바꿔져야 하는지 ^^;;

호주제 폐지하자~ (대안이 없다.. --;)

'고민거리 >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케이준의 뜻  (2) 2007.02.09
인동 장씨~  (0) 2007.02.01
[펌] 7가지 수면 장애  (0) 2007.01.31
화양연화의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0) 2007.01.29
[펌]복분자한우  (0) 2007.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