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0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하자.
김미소 작가의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라는 책을 200 퍼센트 공감해 가면서 읽었다. 그녀가 읽었던 책들의 반 이상은 나도 읽은 책이었고, 그녀가 했던 경험의 반 이상은 내가 했던 경험이다. 다만 나는 직장을 잃진 않았고, 알중 치료를 꾸준히 받지도 않았다는 게 차이점이긴 하다.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이라는 책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고, '나는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이라는 책에서도 이렇게 음주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글에서 우울증과 자책감이 술로 도피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했지만, 나는 식욕이 플러스된 것 같다. 그나마 건강한 돼지가 되어가고 진성알콜중독자가 아닌 다행한 일이다. 진성알중은 오로지 알코올에만 탐심이 있어서 밥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테니까.
코로나 시국만 아니었어도 나의 음주습관을 이렇게 심각하게 반성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오래 전부터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어릴 적엔 여기저기 회식자리에 불러다니느라 바빴다. 이 모임 저 모임 약속이 자꾸 겹치고, 회사 회식자리에 빠지면 눈치 보여서 하루에 두탕이 뛰고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서서히 회사 회식자리에 익숙해지고 회식에서 공짜로 먹는 술과 2차, 3차까지 즐기게 되고...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누군가는 집을 아이 곁을 지켜야 해서 이제부터는 집에 술을 쌓아놓기 시작했다. 물론 전에도 집에서 술을 즐겨 마셨지만 필요할 때 사다 마셨지 상시 비축해 놓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들쳐업고 술을 사러 나가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마침 비라도 온다면 말이다. 요즘처럼 배달이 흔한 시절도 아니었으니... 마트에서 장을 보아 놓은 술은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종종 동이 나기도 했다. 남편과 내가 경쟁적으로 비워나갔으니 ㅋㅋ
회식 좋아하는 맞벌이 부부가 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아이들이 손을 덜 타게 되고 자연스럽게 부부가 같이 하는 활동도 많아지고 술도 자주 마시게 되었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니 가장 아쉬운 건 내 돈으로 술을 사서 먹는 일이다. 의외로 마트에서 술을 사는 비용이 꽤 든다. 반 이상을 책임져 주던 회사가 없으니 매우 아쉽다.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서, 전직장 동료들과 어울려서 외식하고 술 한잔 마시고 그러다 집에 와서 마저 한잔 마시고... 그러나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스스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겨하는 줄 알았는데, 혼술을 더 좋아한다는 것. 어울려서 마시는 걸 좋아하는지 아니면 혼술이 더 좋은지 헷갈리기 시작하였다. 사실 직장에서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걸 즐겨야 했던 것 같다. 직장이 아닌 여가로 만나는 모임에서는 굳이 전력을 다해 어울릴 필요까지는 없었으니까... 점점 혼술쪽으로 취향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쨌든 모임이든 혼자든 술과 함께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2020년 1월 어느날 이후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사적모임 인원제한. 혼술로 정착한 나. 이전의 나는 먼저 나서서 술모임을 조장하는 편이었다. 무엇이든 건수를 만들고 아무거나 갖다 붙여서 모이자고 하는 편이었는데, 코로나시국 이후부터는 누가 불러줘야만 나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함께 마시는 술과 혼술 사이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일단 혼술은 살이 찐다. 말없이 먹는 모드. 계속해서 냉장고를 뒤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먹게 된다. 함께 마시는 술은 안주보다는 술과 이야기가 적당히 버무려져 모임 이후 기분좋게 헤어지는데, 혼술은 헤어짐의 시기가 없다. 그렇지만 혼술은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맥주집에서 와인을 꺼내 몰래 마시지 않아도 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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