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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취향

구름의 시학 - 이어령

<구름의 시학(詩學)>

북구(北歐) 신화에 의하면 구름은 거인(巨人)의 뇌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수증기가 응축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상력 그리고 하나의 사고가 머물고 있는 집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잠시도 정지하지 않고 항상 움직이며 또 변모한다.
구름은 고정되어 있는 일체의 형식을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기류와 계절을 표현한다. 여름의 뭉게구름과 가을의 깃털구름은, 여름의 장미와 가을의 국화 이상으로 계절 의 의미와 그 성격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던가.

구름은 소멸할지언정 죽지 않는다. 우리는 여지껏 구름의 시체를 본 적이 없다. 단지 그것은 비나 눈으로 혹은 한 줄기 섬광이나 천둥소리로 바뀌어 갈 뿐이다.
은유 속에서 의미가 변성되는 언어이다.
구름을 무력하다고 하지 말라. 손에 잡히지도 않고 묶어 둘 수도 없으며, 바위나 돌처럼 그것은 실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환각이 아니다. 식물을 자라게 하는 힘의 근원, 온갖 동물의 호흡을 조정하는 근원의 생(生)이다.

구름을 지상에서의 도피라고 부르지 말아라. 지상과 허공의 한가운데, 그렇다. 허공에의 상승과 지상에로의 하강 바로 그 경계선에서 위치한다. 구름은 텅빈 하늘의 마음과 동 시에 꽉 찬 지상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융합의 언어이다.
언어여 詩여. 인간의 상상력과 그 모든 사념이여. 그것들에 형태를 부여하면 너희들은 구름이 될 것이다.

구름의 언어는 쇠망치로 파괴되지 않는다. 철책으로 가둘 수가 없다. 대포로 겨냥할 수도 없고 진흙으로 오염시킬 수도 없다.
분노하는 먹구름의 천둥소리를 들어라. 여름 하늘에 경쾌한 압운(押韻)을 밟으며 굴러가는 순백의 뭉게구름을 보거라. 그것은 온갖 감정의 형태, 상상력의 조화, 자유로운 사념의 확장이다.
역사를 역사 위에서 지배하는 것은 구름의 시학(詩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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